2010년 1월 14일 목요일

옥션 소송의 경악스러운 결과

1. 옥션 회원들이 제기한 개인정보해킹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서울중앙지방법원)

일단 재판부는 옥션이 가능한 한 보안지침을 지켰기 때문에 외부의 해킹에 대하여 불가항력으로 책임이 없다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이는 한국 인터넷 업체들의 사악한 행태를 도외시한 것이다.

2. 한국인만 개인정보 요구하는 인터넷 업체

우리나라 정부는 항상 소비자보다는 기업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펴왔다

인터넷 정책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외국에서 인터넷 업체들이 네티즌들에게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기업 내부와 외부에서 늘 발생할 수 있는 개인 정보 침해를 100% 막을 수는 없고 네티즌들의 높은 사생활보호권리의식때문에 만일 개인정보를 요구하면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고 가입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세계 조류와 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인터넷 업체들이 무분별하게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그저 방관만 해왔고 심지어 게시판을 운영하는 업체들에게는 실명제를 강제로 실시하게 하였다. 그 결과 작년에 구글의 유튜브에도 실명제를 하라고 하였고 전 세계 네티즌의 비웃음을 당하였다.


우리나라 인터넷 쇼핑몰은 가장 중요한 개인정보인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하지 않고는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쇼핑몰들이 압도적이고 어쩌다가 비회원주문이 가능하여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는 쇼핑몰이 있다. 더 웃기는 건 비회원주문이면서도 주민번호를 입력하게 하는 쇼핑몰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한국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주민번호를 입력하고 가입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강제적인 상황에서 인터넷 업체들이 자신들의 광고유치와 편의를 위하여 주민번호를 요구하면서 해킹에 대해 불가항력이었다고만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아예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말아야 하고 요구하였으면 해킹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져야 하는 것이다.

3.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이베이

특히 옥션은 국내기업이라기보다는 미국 이베이(ebay)에 매각된 외국 회사다.
그런데 이베이는 인터넷 경매몰인 이베이 닷컴에 가입하기 위해 주민번호(신분확인번호)를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주민번호가 없고 신분확인용으로 사회보장번호가 있긴 하나 기업들은 감히 이러한 정보를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 당연히 한국인이 이베이닷컴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주민번호를 기입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베이는 옥션에서는 한국인의 주민번호를 요구한다. 물론 이베이가 옥션을 매입하기 전에도 옥션은 주민번호를 요구하였으므로 잘못은 아니다. 이베이닷컴처럼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회원관리, 광고유치와 분석을 위하여 너무나 편하고 합법적인 제도를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옥션 개인정보유출사건은 중국 해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리사욕을 위하여 소비자를 상대로 개인정보수집에 열을 올리는 인터넷 업체들, 자신의 개인정보보호에 소홀한 한국인의 정서, 통제를 위하여 주민번호정책을 유지해온 정부, 이러한 개인정보를 사법적으로 보호해 주지 못하는 법원등 총체적인 한국만의 문제인 것이다.

3. 사악한 한국 인터넷 업체
따라서 한국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의 기업들은 네티즌들에게 절대 요구하지 않는 주민번호를 한국 인터넷 업체들만 요구하는 것은 정말 사악한 짓이다.

네이버나 네이트가 해외진출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해외 진출한 사이트에서 해외국민들에게 주민번호와 같은 정도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지 정말 궁금하고 만약 요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한국인과 다른 국민들과의 역차별이다.

4. 이제는 노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은 정부와 인터넷 업체들의 농간에 맞서서 당당하게 노라고 말하면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업체들을 탈퇴하여야 한다. 외국인들은 항상 의아해해왔다 어떻게한국인들은 일개 사기업을 믿고 가장 중요한 개인 정보를 제공해주는지
이제 한국인의 개인정보는 전 세계 국민들이 손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되었다.

5. 결론
우선 이번 판결로 인하여 인터넷업체의 가입자들은 자신의 자의로 개인정보를 제공한 것에 대하여 자신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부당하다. 기업은 소비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소비자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여서는 안 된다. 외국 어떤 나라들의 인터넷쇼핑몰업체에서도 결코 요구하지 않는 주민번호를 한국 인터넷 쇼핑몰만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요구인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원고들 변호인단이 이러한 점을 주장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국내 소비자보호법과 공정거래법에 의해서도 충분히 주장할 수 있고 인용될 여지가 크다고 본다.

만약 옥션이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고 주민번호를 입력하는 경우에만 혜택이 있는 경우 즉 소비자가 주민번호입력에 대하여 선택할 수 있다면(이 경우도 그 혜택이 지나치게 크다면 이것도 불공정한 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주민번호를 입력한 소비자들은 해킹에 대하여 일정 부분 자기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고 옥션과 책임을 분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옥션은 소비자에게 어떠한 선택도 주지 않고 무조건 주민번호를 입력하게 해 놓고서 불가항력이라고 주장하여 면책을 받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외국의 거대 인터넷 업체인 옥션의 본사인 '이베이' 그리고 대형 쇼핑몰인 '아마존'도 소비자들에게 어떠한 주민번호에 상응하는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도대체 한국 소비자들은 언제까지 국내기업들의 사리사욕에 휘둘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이건희 특별사면

이건희 특별사면 - 유전무죄 , 무전유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건희가 특별사면되었다.

국민들의 이건희에 대한 불법성에 관한 감정은 그대로라 국민들이 느끼는 법적 박탈감은 클 것으로 보여진다.

이건희가 올림픽위원으로 복귀가 되더라도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자가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는지부터 의아스럽다.
가히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맞긴 맞나 보다.

누구는 불우한 가정환경에 자라 어린 나이에 배가 고파 시작한 절도(이건희와 비교가 안 되는 푼 돈)로 인하여 수 년의 징역을 살고 누구는 상상도 못할 액수의 배임 및 조세포탈을 범하고도 특별사면이라니 과연 이 나라에 정의가 존재하고는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정의라는 것도 권력자의 반대자에게만 잣대를 들이대는 정권 유지를 위한 허울 좋은 창에 불과한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기분 좋은 소식은 없이 특별사면과 국회의 난장속에서 2009년을 마무리 해야 하는 것이 너무도 씁쓸하다.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 위장전입에 관하여(유권력무죄, 무권력유죄?)

위장전입은 자녀 학군문제로 누구나 유혹을 받는 사안으로 현실적으로 가고자 하는 학군에 거주할 수 없는 경우 그 학군에 거주하고 있는 친 인척주소로 위장전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위장전입이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검찰총장이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검찰이 다른 자들에 대하여 수사하고 형벌을 집행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어서 김준규를 검찰총장후보로 내세운 것일까?

이것은 권력이 있는 자는 무죄이고 권력이 없는 자는 유죄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장전입으로 걸려서 이미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들은 만약 김후보자가 검찰총장이 된다면 얼마나 억울해 할 것인가

가뜩이나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관 신영철이 아직도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마당에 검찰총장까지 떳떳하지 못하면서 무슨 법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촛불시위자는 구속당하고 처벌받으며, 소신있는 발언을 한 배우 김민선은 여당 국회의원에게 책임지라는 비난을 받고 소송까지 당하질 않나 전정권에서 임명되었다는 이유로 임기가 보장된 각종 공사의 장들은 사임을 강요당해 결국 사임하질 않나 이것이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의 법치인가?

2009년 8월 4일 화요일

강호순 사형확정 그리고 사형제도


강호순같은 연쇄살인범을 보면 치가 떨리고 사형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사형제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의문도 든다.

물론 타인의 목숨을 뺏은 자는 동시에 자신의 목숨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일견 타당해보이나 가까이는 용산참사에서 죽은 사람들, 80년대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 6.25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생각하면 이들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하는 자들이 과연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는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더욱이 사형집행 후 무죄임이 입증된 경우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점도 큰 문제다. 우리나라 현대사만 보더라도 억울하게 사형당한 시국사범이 있지 않은가.

이른바 선진국들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추세이고 미국은 각 주마다 다르고 우리나라도 사형제도는 유지되고 있으나 최근 몇 년간 집행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으며 고 김수환추기경은 생전에 사형제도를 반대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사형제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 데드맨위킹은 죽어 마땅한 살인범, 살해당한 피해자들 관계자들의 애통함, 사형장면등을 숀 팬과 수잔 서랜든의 열연으로 보여주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형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이미 사형제도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1996. 11. 28. 95헌바1 전원재판부로 조승형 재판관과 김진우 재판관은 위헌의견을 나머지 재판관은 합헌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하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보면,

다수인 합헌의견

생명권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나, 생명권에 대한 제한은 곧 생명권의 완전한 박탈을 의미한다 할 것이므로, 사형이 비례의 원칙에 따라서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 아니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 그것이 비록 생명을 빼앗는 형벌이라 하더라도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나) 모든 인간의 생명은 자연적 존재로서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고 할 것이나 그 동등한 가치가 서로 충돌하게 되거나 생명의 침해에 못지 아니한 중대한 공익을 침해하는 등의 경우에는 국민의 생명·재산 등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국가는 어떠한 생명 또는 법익이 보호되어야 할 것인지 그 규준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등의 범죄행위에 대한 불법적 효과로서 지극히 한정적인 경우에만 부과되는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따라서 사형은 이러한 측면에서 헌법상의 비례의 원칙에 반하지 아니한다 할 것이고, 적어도 우리의 현행 헌법이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형벌의 한 종류이기도 하므로 아직은 우리의 헌법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되지 아니한다.

2. 刑法 제250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살인의 죄는 인간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의 전형이고, 이러한 번죄에는 그 행위의 태양이나 결과의 중대성으로 미루어 보아 반인륜적 범죄라고 규정지워질 수 있는 극악한 유형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형을 형별의 한 종류로서 합헌이라고 보는 한 그와 같이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에 대하여 행위자의 생명을 부정하는 사형을 그 불법효과의 하나로서 규정한 것은 행위자의 생명과 그 가치가 동일한 하나의 혹은 다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의 선택이라고 볼 수 밖에 없으므로 이를 가리켜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어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다.



재판관 김진우의 반대의견

나는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다수의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의견을 개진한다.

가. (1)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여 모든 국민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는 존재임을 명확히 확인하고 있다. 헌법 제10조에서 이와 같이 확인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헌법개정에 의해서도 삭제되거나 제한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고, 헌법의 다른 규정들에 의하여도 제한되어서는 아니되는 헌법의 최고의 가치이며, 위와 같은 확인은 가장 중요한 가치결단인 것이다. 다른 기본권들은 이와 같이 최고의 의미를 갖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각 생활영역에서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다른 기본권규정들에 대한 해석의 지침인 동시에 다른 기본권의 제한에 있어서의 절대적 한계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기본권보장규범들 이외의 다른 규정들에 대한 해석의 지침으로 작용한다.

(2) 헌법 제10조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보호의 요청은 형사입법, 형사법의 적용과 집행의 모든 영역에서 지도적 원리로서 작용한다. 그러므로 형사법의 영역에서 입법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악법의 제정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박탈 내지 제한하는 것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벌제도를 채택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 반한다. 이는, 극악한 범죄를 범함으로써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 자라도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고 있는 인간존재인 한, 그에 대하여도 피해자 내지 그 가족 또는 사회의 보복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또는 유사 범죄의 일반적 예방이라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비인간적인 형벌을 적용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형벌로서의 사형은 자유형과는 달리 사형선고를 받은 자에게 개과천선할 수 있는 도덕적 자유조차 남겨주지 아니하는 형벌제도로서 개인을 전적으로 국가 또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단순한 수단 내지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서 사형수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다. 사형제도는 나아가 양심에 반하여 법규정에 의하여 사형을 언도해야 하는 법관은 물론, 또 그 양심에 반하여 직무상 어쩔수 없이 사형의 집행에 관여하는 자들의 양심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형벌제도이기도 하다.

나. (1) 그런데 다수의견은 헌법 제12조 제1항이 "모든 국민은 …… 법률과 적법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는 한편, 헌법 제110조 제4항이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법률이 정하는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함으로써 적어도 문언의 해석상으로는 간접적이나마 법률에 의하여 사형이 형벌로서 정해지고 또 적용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서, 이를 사형제도의 합헌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주요 논거들 중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2) 그러나 먼저 헌법 제12조 제1항에서 말하는 적법절차의 원칙이란 입법, 행정 등 국가의 모든 공권력작용에는 절차상의 적법성뿐만 아니라 법률의 실체적 내용도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춘 실체적인 적법성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헌법재판소 1992. 12. 24. 선고, 92헌가8 결정 등 참조). 그러므로 법률이 정한 처벌도 적법절차에 합치하려면 그 법률에 정한 형벌의 내용이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가)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법관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하는 재판인 한 오판이 있을 수 있고 그 경우 집행을 마친 후에 있어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원상회복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사형제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인 범인의 영구적 격리나 범죄의 일반예방이라는 공익은 무기징역에 의하여도 달성될 수 있는 것인데도 국민의 기본권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의미를 갖는 기본권인 생명권(인간의 생명은 그 개개인에 있어서는 하나의 우주이고, 지구보다 무거운 것이다)을 완전히 최종적으로 박탈하는 사형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규정은 피해의 최소성원칙에 반하여 기본권제한에 있어서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되고, 위와 같은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 반할 뿐만 아니라(이 점에 관해서는 조승형 재판관의 반대의견에서 상세한 설명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위 가.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 제10조에서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도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형벌제도로서의 사형제도는 아무런 정당성도 합리성도 없는 것이어서 사형제도 및 이를 규정한 법률규정은 적법절차에 반하는 형벌 및 법률규정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헌법 제12조 제1항이 사형제도의 합헌론의 근거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나) 또한 다수의견은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에 사형제도의 헌법적 근거가 있다고 보고 있으나 이러한 입장에는 찬성할 수 없다.

①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는 사형제도가 법률 차원에서 하나의 형벌제도로 인정되고 있다는 법적 상황을 전제로 사형의 선고가 갖는 기본권침해의 심각성에 비추어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이 일정한 범죄에 대하여 단심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본문의 규정에 대한 예외를 설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법률차원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되는 경우 동 단서조항은 사문화되어 버릴 정도로 동 단서조항의 실제적 의미는 법률차원에서 사형제도가 계속 존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이 규정을 사형제도에 관한 실정 헌법적 근거로 보는 데는 의문이 있다.

② 그러나 설사 다수의견과 같이 위 헌법조항에서 사형제도의 헌법적 근거를 간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위 헌법조항은, 사형제도가 위헌인 한, 헌법에 위반되는 위헌적인 규정이기 때문에 사형제도를 합헌이라고 보는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

㉠ 물론 헌법에 반하는 헌법조항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헌법규범들이 등가치적인 것은 아니며, 헌법규범들 상호 간에 어느 정도의 가치서열이 있다는 것이 헌법이론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다. 또한 자유민주적인 헌법제정이나 헌법개정을 통하여 헌법의 근본규범 내지 근본가치에 위반되는 헌법규범이 생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으나 그러한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헌법의 근본가치를 부인하거나 제한하는 규범이 헌법제정시나 헌법의 개정시에 헌법의 각 조항들의 의미에 관하여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못한채 헌법에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졸속으로 헌법제정 및 헌법개정의 작업이 진행되었던 우리의 헌정사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없다고 할 수는 없다.

㉡ 이론적으로 위와 같이 헌법 규범들 상호 간에 위계가 있고, 따라서 헌법에 반하는 헌법규범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위헌적 헌법규범을 위헌으로 선언할 수 있는지, 더구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확정된 헌법규범을 위헌으로 선언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 사건에서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는 심판대상이 아니어서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여기서 판단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게 그러한 규범을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이 제도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떤 헌법규정이 근본적인 의미를 갖는 헌법규범에 반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그 규정에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삼가함으로써 헌법의 근본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헌법재판소가 선택하여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

㉢ 그러므로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가 비록 헌법적 지위를 갖는 법규범이라 하더라도, 동 규정이 국가가 사형제도를 통하여 인간의 생명을 제도적으로 박탈함으로써 사형수는 물론 사형집행에 관련된 자들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을 용인하는 한, 그 규정 중 사형제도의 인정은 헌법의 근본가치를 규정하고 있는 상위의 헌법규범인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위반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로서는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 중 사형제도를 인정하는 부분은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아니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사건에 관한 법리구성을 하여야 하며, 다수의견과 같이, 이 규정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형제도의 합헌성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원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아니하다고 본다.

다. 나는 이상과 같은 이유로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것이다.

재판관 조승형의 반대의견

나는 사형제도가 위헌이라는 의견으로 주문 제1항의 다수의견에 대하여 반대한다.

무릇 사형이란 국가권력이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수형자의 생명을 박탈하여 그 존재를 영구히 말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형벌 즉 이른바 극형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구성한 사회·국가권력 다시말하면 인간이 과연 같은 사회 국가의 구성원인 다른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것인가의 이 문제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오랫동안 찬반의 논란이 있어 왔고 각인의 가치관과 인생관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되어 왔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제사회가 민주사회로 변천하고 인권의식이 고양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선진제국이 이 제도를 폐지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그 수가 무려 60여개 국가에 이르고(별지 1 참조) 있어, 종당에는 세계의 모든 국가가 이 제도를 폐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과 추론을 배제할 수 없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90년대부터 기왕에 사형에 처할 수 있었던 범죄를 점차 줄여가고 있는 실정(별지 2 참조)이며, 특히 1996. 11. 18. 정부에서 형법개정안을 확정하면서, 사형은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신중히 고려해 선고해야 한다는 "사형선고 신중선언" 규정을 신설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위와 같은 전망과 추론이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나는 이와 같은 사형제도의 폐지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바탕으로 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형제도의 폐지는 이 시대에 요구되는 당위라고 생각한다.

가.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 이외의 어떠한 권위로서도 사람이 이를 박탈할 수는 없다.

사람은 창조주에 의하여 피조된 신비스러운 존재이며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 다음으로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것이므로,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일은 창조주만이 가능할 뿐 창조주가 아닌 사람은, 그 어떠한 권위를 가지고서도, 사람이 만든 어떠한 법과 제도를 통하여서도,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이는 창조주의 권위보다 더 큰 권위를 찬탈하는 것이 되며 창조주의 구원(救援)을 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생명에 대하여서는 부정적인 어떠한 사회과학적 평가나 법적인 평가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할 것이며, 이와 같은 평가로 세워진 사형제도는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사형제도의 존치론자중 혹자들은 성경 창세기 9장 6절, 출애굽기 21장 24-25절의 성구를 인용하고 있으나, 이 성구들은 보복의 관념을 어느 경우라도 정당화한 것이 아니라 신체에 한하여 보복이 가능함을 말하는 보복의 한계를 정한 것이라 보이며 생명에 대한 보복이 가능함을 정한 성구라고는 이해되지 아니하므로 그들의 인용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나. 인간의 생명권은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이를 박탈할 수는 없다.

사람의 생명에 대하여도 부정적으로 사회과학적·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하여, 헌법상 기본권인 인간의 생명권으로서 법률상의 의미를 조영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권은 사람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 그리고 고유한 존재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이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는 모든 기본권이 생명이 있음을 전제로 하여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모든 기본권의 근원이 되는 최고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어떠한 법률이나 제도에 의하여서도 박탈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다. 우리 헌법의 근본정신은 사형제도를 부인하고 있음이 분명하고 생명권은 헌법 제37조 제2항의 기본권 제한에 관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형제도는 아직도 사회안전의 유지라는 명분으로 존치되고 있지만 본래 국가의 목적수행에 있어서 유용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특히 개인존중의 이념이 무시된 전제군주제나 전체주의국가에서 군주나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유지와 권위보전의 수단으로 애용되어 왔다고 보여진다.

우리 헌법은 제1조에서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부인하고 있으며, 제10조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즉 인격주의를 선언하고 불가침의 기본권이 있음을 확인하며 그 보장의무가 국가에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헌법의 근본정신은 반전체주의적 정신과 인격주의라 할 것이므로 생명박탈의 형벌은 바로 이 정신에 반하는 형벌로써, 우리 헌법이 사형제도를 예정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논리상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즉 이와 같은 근본정신하에서 사형을 인정한다면 이는 곧 전체주의국가임을 자인하고 인격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 그 스스로 논리적인 모순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가 불가침의 기본권이 있음을 확인한다 함은 적어도 기본권 중에서 근원적이며 최고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이 불가침의 기본권으로 확인함을 의미하며, 국가가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함은 국가가 스스로 이 불가침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생명권은 기본권 제한에 관한 헌법 제37조 제2항의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우리 헌법이 사형제도를 예정하고 있다는 다수의견은 납득하기 어렵다).

라. 사형제도는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생명권의 제한이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에 위반된다고 본다.


생명권의 제한은 성질상 생명의 박탈을 의미하며 생명권의 본질은 생명 그 자체이므로 이의 박탈은 곧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권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냐는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헌법 제12조가 신체의 자유권을 보장하고 있는 바, 신체는 본래 생명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므로 생명의 박탈은 곧 신체의 박탈이며 신체가 없는 신체의 자유권은 그 본래의 의미까지 상실하게 되고 결국 신체자유권의 본질적 내용까지도 침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수의견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 정당한 이유없이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거나 그에 못지 아니한 중대한 공공이익을 침해한 경우에 국법은 그 중에서 타인의 생명이나 공공이익을 우선하여 보호할 것인가의 규준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이러한 경우에는 생명에 대한 법적 평가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생명권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며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 않는 공공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 그것이 비록 생명을 빼앗는 형벌이라 하더라도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에 위반되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주장하나, 이 주장은 헌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 따라 기본권을 제한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입법목적의 정당성, 입법수단의 필요성(적정성·피해의 최소성·법익 균형성) 등 기본권 제한의 상대적 한계인 제원칙과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의 절대적 한계규정을 혼동하였거나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오해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주장에 불과하여 부당하다. 즉 헌법 제37조 제2항 본문은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로써 제한함에 있어서는 입법목적의 정당성, 입법수단의 필요성(적정성·피해의 최소성·법익 균형성) 등 제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제1차적이고 원칙적이며 상대적인 기본권 제한의 한계규정을 정한 것이고,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는 위와 같은 상대적인 한계규정을 준수하더라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최종적이고 예외적이며 절대적인 기본권 제한의 한계규정을 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가사 헌법 제37조 제2항의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생명권은 다른 기본권들과는 달리 그 본질적 내용이 생명의 유지이므로 생명의 박탈은 곧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며, 위의 절대적 한계를 일탈하는 것이 되므로 생명권이 헌법상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된다는 견해는 헌법 제37조 제2항 본문과 단서규정을 오해하였거나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오해하였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 가사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상의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형벌의 목적은 응보·범죄의 일반예방·범죄인의 개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벌로서의 사형은 이와 같은 목적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 생명권을 제한하는 목적의 정당성, 그 수단으로서의 적정성·피해의 최소성 등 제원칙에 반한다.

(1) 사형은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범죄자에 대한 개선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형벌일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형벌의 목적의 하나인 개선의 목적에 반하여 사형제도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범죄인에 대한 개선의 목적은 개선이 가능한 범죄인에 대하여서만 이룰 수 있을 뿐, 개선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범죄인에 대하여서는 그 목적을 이룰 가능성은 없다고 할 것이나, 과연 개선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범죄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극히 어려운 문제라 할 것이고, 가사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를 절대적으로 명확하게 판단한다는 문제는 더욱 어려운 문제로 결국 인간의 판단력으로서는 불가능한 문제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모든 범죄인에 대한 개선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범죄의 책임이 범죄인 개인만이 아니라 그가 속하여 있는 사회에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면, 범죄인에 대한 개선이라는 형벌의 한 목적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형벌의 목적달성의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도를 존치함은 그 길을 포기하는 것으로써 사형제도의 정당성은 인정될 수 없다.

(2) 재판은 인간이 하는 심판이므로 오판을 절대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고 오판이 시정되기 이전에 사형이 집행되었을 경우에는 비록 후일에 오판임이 판명되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원상으로 복원시킬 수는 없는 것이므로 사형제도는 어떠한 이유로도 그 정당성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3) 사형이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본능을 이용한 가장 냉엄한 형벌로서 그 위하력을 통한 일반적 범죄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는 문제는 오랫동안 많은 학자들이 실증적인 연구조사를 하여 오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따르면 예방효과를 인정하는 견해는 소수에 불과하고 다수견해는 그 효과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사형제도로서도 형벌의 목적의 하나인 범죄의 일반적 예방의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는 할 수 없으며 그 효과면에서 보더라도 무기징역형을 최고의 형벌로 정하는 경우와 비교하여 크나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형제도가 형벌의 한 수단으로서 적정하다거나 필요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이와 같은 효과가 클 것이라고 추정하고 기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소박한 국민감정에 비추어 볼 때 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국민일반의 법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국민여론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살피면, 여론조사는 알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 대다수 국민의 평범한 생각으로, 알기회를 가져서 알고 있는 일부 국민의 생각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행하여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살인죄에 대한 사형은 당연하다"는 생각은 국민 대다수의 소박하고 평범한 서민감각이며 국민대다수는 이와 같은 서민감각을 쉽게 버릴 수 없을 것이므로 그들의 생각이 여론조사에 그대로 반영될 것은 뻔한 노릇이며, 이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완전하게 전달한 후가 아니면, 사형폐지론을 비판하는데에 남용되는 의도적인 산물에 불과할 뿐 국민일반의 법감정으로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또한 생명은 평범이상의 신비스런 외경의 존재이므로 이와 같은 평범한 서민감각을 일반의 경우와 동일하게 국민 일반의 법감정으로 승화하거나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다수의견이 내세우는 위 근거는 적어도 사형제도의 존치에 관한한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할 것이다.

(4) 사형이라 하여 무기징역형보다 반드시 위하력이 강하고 범죄발생의 예방효과가 높다고 보아야 할 합리적 근거를 발견할 수 없음은 앞서 본 실증적 연구조사결과로 보아 분명하고, 영구히 사회로부터 범죄를 격리한다는 기능에 있어서는 사형과 무기징역간에 별다른 차이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사형제도를 통하지 아니하더라도 이를 대체하여 무기징역형 제도를 통하여 형벌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박탈이라는 가장 큰 피해를 입혀 생명권을 제한함은 피해의 최소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것이다.

(5) 다수의견은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등의 범죄행위에 대한 불법적 효과로서 지극히 한정적인 경우에만 부과되는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으로서, 지금도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주장하나, 자연법적 요구는 오히려 인간의 생명권이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임을 요구하고 있다 함은 앞서 본 바와 같고 다수의견도 그 점에 관하여서는 수긍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죽음에 대한 본능적 공포심과 응보욕구가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라 운운함은 논리적으로 그 선후가 모순되어 수긍할 수 없다. 또한 다수의견이 그 논리의 전제로 삼고 있는, 즉 사형이 지극히 한정된 경우에만 부과되는 형벌이라는 전제는,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각종 형사법이 광범위하게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실정을 외면하였거나, 이러한 실정이 지극히 한정된 경우의 실정이라는 주장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전제인 바, 이는 아전인수의 유도논리의 전제에 불과하며, 후손에게 지극히 한정된 경우라함은 이러한 경우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모습이 되어 곤혹스럽다.

또, 다수의견이 말하는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함은 "생명박탈이 다른 생명권의 보호보장이라"는 논리로도 이해되는 바, 이는 형법상 정당방위나 정당행위의 논리와 맥을 같이 하는 바, 자기의 생명에 대한 현재의 급박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하여 부득이 그 침해자의 생명을 박탈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의 경우라면 모르되, 그와 같은 경우가 아닌, 생명박탈범에 대하여 후일에 국가가 형벌로써 그의 생명을 박탈하는 경우(현재의 급박한 침해의 상태가 아닌 경우) 등은 생명을 박탈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의 경우라고 강변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점에서도 다수의견은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다수의견은 어느 경우나 사형제도의 입법수단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비례성 등 제원칙을 지켰다는 주장을 논증하지 못하고 있어 부당하다.

바. 사형제도는 시대의 변화(정치·사회·문화·국제사회 등 제분야에 있어서의 변천)에 순응하여 폐지되어야 한다.

고금을 통하여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논쟁이 이어져 오는 동안 오늘에 이르러서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제도를 폐지한 국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사형존치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드물며, 다만 정치·사회·문화적 여건으로 보아 사형폐지는 시기상조라고 하거나 단계적인 폐지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이 사형폐지의 당위성만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 독재와 독선으로 일관하였던 헌정사를 마감하고 이른바 문민정치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으며, 남녀고용평등, 노사공존, 각종 복지제도를 과감하게 실시하여 적절한 소득의 재분배, 빈부격차와 계층간 위화의 해소 등 국민총화를 이루어가고 있으며 각 종교와 자선단체의 노력으로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높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형수의 사면을 원하는 등 가해자를 용서하는 피해자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등 귀감이 되어 국민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시민적·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협약(제6조 참조), 유럽인권협정인 인권및기본적자유보장을위한협정(제1조 참조)에서 사형제도의 폐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들 협정에 가입한 국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와 같은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고 아직도 존치론이나 시기상조론 및 단계적 폐지론을 고집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우리 헌법재판관은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여 과감하게 사형제도가 위헌임을 선언함으로써 사회개혁에 선도적 역할을 다하여야 할 것으로 믿는다.

사. 나는 지금까지 사형제도의 존폐에 관하여 오랫동안 좌고우면(左顧右眄)하여 왔으나 이제 이와 같은 태도를 버리고 이 시대에 우리 헌법재판관에게 지워진 소명에 따라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다수의견을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의 경우 주문 제1항은 "형법 제41조 제1호, 제250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반된다"라고 함이 마땅하다

다수의견은 헌법 제112조에 '사형'이라는 어구가 있으므로 헌법 자체에서 사형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범죄와 비례성의 원칙에 부합하는 한 사형은 합헌이라는 취지이며 위헌의견은 이러한 헌법조문은 사형을 전제로 하는 규정이 아니며 사형은 비례성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 위헌적인 제도라고 하였다.

너무 긴 내용의 헌법재판결정문의 발췌이나 강호순의 사형확정과 더불어 사형제도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하여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09년 8월 1일 토요일

드라마 파트너와 부동산 이중매매


요즘 드라마 파트너의 주된 내용중 하나가 떡볶이 할머니 토지 이중매매사건이다.

그 내용을 보면 떡볶이할머니가 자신의 돈을 가지고 아들 이름으로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매도인에게 중도금까지 주었는데 매도인이 잔금지급을 받지 않고 미루어서 할머니가 유변호사에게 토지등기를 해달라고 위임하였는데 그 사이 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토지를 다시 팔아 등기까지 경료한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유변호사가 잘못했다면서 다시 주인공변호사들에게 유변호사에 대한 소송을 위임하였고 현재 법정공방중이다.

일단 위와 같이 토지의 이중매매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고 그 액수도 크기 때문에 판례와 학설이 정립되어 있는 부분이다.

갑(매수인)이 을(매도인)과 토지매매계약을 체결

1. 갑이 을에게 계약금만 주고 을이 병에게 다시 토지를 매도하여 병에게 등기해준 경우

계약금만 준 상태에서는 특약이 없는 한 서로 자유롭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따라서 을은 갑과의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갑에게 계약금을 돌려주어야 하므로 갑은 을에게 계약금반환청구와 이자를 청구하면 된다.

2. 갑이 을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을 준 후 을이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병과 다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병에게 아직 등기를 해주지 않은 경우

이 경우 갑과 병 모두 을에게 잔금을 지급하고 등기를 할 수 있고 먼저 등기한 자가 토지소유권자가 된다.
따라서 을이 잔금을 받지 않는다면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신청과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
(드라마상에는 이 단계에서 할머니가 유변호사를 선임하였고 유변호사가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은 동안 병에게 등기된 경우이다.)


3. 갑이 을에게 중도금을 준 후 을이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병과 다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등기까지 해준 경우

병이 정당한 토지소유권자가 되어 갑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게 되고 다만 을에게 대금반환청구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4. 병이 갑과 을의 매매계약체결과 을이 갑으로부터 중도금을 받은 사실을 전부 알고 을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중매매를 하라고 하여 병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를 한 경우 병도 배임죄가 성립하고 병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가 되어 갑은 을에게 잔금을 지급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여 소유권자가 될 수 있다.

5.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중도금까지 받은 후 다시 다른 사람과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그 사람에게도 중도금까지 받으면 배임죄의 미수가 성립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전등기까지 해주면 배임죄의 기수가 성립한다.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민사상 손해배상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형사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부동산매매계약당시 만약 이중매매를 하게 되면 배임죄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매도인에게 상기시킨다면 이중매매를 사전에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오면 파트너는 일단 전문법정드라마로 불리우기 충분하다고 본다. 군데군데 실제 절차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나 그리 큰 단점도 아니고 종래 법률드라마라고 하던 드라마들은 그저 주인공이 변호사인 멜로드라마였다. '신의 저울'도 전문드라마라고 하기보다는 억울한 사법피해자의 이야기로 볼 수 있어 사건 중심의 전문직드마라로써는 파트너가 최초가 아닌가 싶다.

다만 아직도 우리나라 드라마제작담당자들은 모든 드라마에 멜로요소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드라마도 불륜코드, 삼각관계등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완성도있는드라마가 되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2009년 7월 30일 목요일

양벌규정 위헌

헌법재판소가 법인이나 사용자의 피용자가 업무와 관련하여 범법행위를 한 경우 법인의 대표자와 사용자를 처벌하는 양벌규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형사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란 범죄행위를 행한 자만이 형사책임을 진다는 것으로 예전부터 직접 범죄행위를 한 피용자의 행위로 사용자가 처벌을 받는 것에 대하여 책임주의 위반으로 위헌이라는 논란이 있어왔는데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위 법률들이 위헌판결을 받게 된 바 앞으로는 사용자나 대표자의 명령으로 행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사용자나 대표자를 교사범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교사행위를 입증하여야 하며, 고용관계가 아닌 교사행위의 경우에는 대가관계, 범죄로 인한 이익, 친분관계등으로 입증하였으나 고용관계인 경우에는 고용관계라는 점과 별개로 구체적인 교사행위가 있었음을 입증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구체적인 교사행위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사용자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거나 범법행위인지 모르고 사용자에게 이용을 당한 피용자만 처벌받게 되는 일이 많아지게 되면 그것 또한 유전무죄가 되어 형사정의가 떨어지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2009년 7월 24일 금요일

미디어법과 권한쟁의 심판에 관하여

미디어법이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대리투표나 재투표의 존부, 여당의 권한침해존부, 미디어법의 무효여부
등의 실질적인 판단에 관한 의견에 대하여 헌법학회장이 언론에 무효라
고 주장하였고 야당은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우선 권한쟁의심판이 일반인들이 익숙한 헌법소원이나 위헌법률심판과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심판정족수이다.

법률의 위헌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총 9인의 재판관 중 6인이상의 위헌
의견이 있어야 하나 헌법재판소가 권한쟁의심판에서 권한침해를 판단하
기 위해서는 7인이상의 출석으로 심리하고 종국심리에 관여한 재판관의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할 수 있으므로, 즉 재판관 9인 모두 심리에 관여
하여도 5인만 침해의견이면 침해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권한쟁의심판결정으로 권한침해로 인정되면 법률이 무효가
되는데 헌법재판소법이 위헌법률결정에서 6인이상의 가중요건을 규정
하는 것과 균형을 이루어 법률이 무효가 되기 위해서는 6인이상의 재판
관이 필요하다는 견해와 권한쟁의의결요건과 동일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위헌법률심판이란 국회가 절차적으로 정당하게 법을 제정하였음을 전제
하고 그 법률 내용의 위헌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므로 엄격하게 6인이상이
라고 정한 것이지만

권한쟁의는 법률이 절차적으로 정당하게 제정되었느냐를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6인이상이라는 가중요건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위헌법률
심판의 결정정족 수와 같아야 한다는 주장은 헌법재판소법을 확대해석한
것이고 헌법재판관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대리투표와 재투표의 위헌여부가 쟁점이나 헌법재판소로 넘어
간 이상 이 심판결정정족수의 문제도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다.

부디 헌법재판관이 외부의 압력없이 소신껏 재판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